본문 바로가기
카테고리 없음

넉넉한 가슴을 지닌 사람

by 쓸만한 집 2023. 12. 8.

넉넉한 가슴을 지닌 사람

 

 

생각날 때 전화할 수 있고,

짜증 날 때 투정 부릴 수 있는...

내게 더없이 넓은 가슴을 빌려줄 수 있는

사람이 있었으면 했다.

 

눈이 부시도록 푸른 하늘이

혼자 보기엔 안타까워 같이 보고

이렇게 퇴근길이 외롭다고 느껴질 때

잠시 만나서 커피라도 한잔할 수 있고

가슴 한아름 아득한 미소를 받고 싶은

사람이 있었으면 했다.

 

거울 한번 덜 봐도 머리 한번 덜 빗어도

화장하지 않은 맹숭맹숭한 얼굴로 만나도

전혀 부끄럽지 않고 미안하지 않고

오히려 그게 더 친숙해져서 예쁘게

함박웃음 웃을 수 있고

 

서로의 겉모습보다는

둥그런 마음이 매력 있다면서

언제 어디서 우연히 길을 가다가

은행가다가 총총히 바쁜 걸음에

가볍게 어깨를 부딪혀서

아! 하고 기분 좋게 반갑게 설레일 수 있는

사람이 있었으면 했다.

 

내 열 마디의 종알거림에 묵묵히 끄덕여 주고

주제넘은 내 간섭을 시간이 흐른 후에 깨우쳐 주는

넉넉한 가슴을 지닌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.

 

가끔은 저녁값이 모자라 빈 주머니를

내보이면서 웃을 줄도 알고

속상했던 일을 곤드레 술이 취해

세상에 큰소리칠 줄도 알고

술값도 지불케 하는 가끔은 의외의 면이 있는

낭만스러운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.

 

 

부모님의 수고스러움을 늘 감사하고

형제들의 사랑을 늘 가슴 깊이 새기며

자신을 조금은 다스릴 수 있는

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.

 

그리고 거기에 어울리는 이가

나였으면 더욱 좋겠다.

 

 

 

 

 

- 유안진-

 

사랑 바닥까지 울어야:

지란지교의 유안진 신작 에세이